기자는 박복희 회장에게, 왜 경영인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 여성 기업가로서 무엇을 계획하고 있는지 박복희 회장이 필리핀 한인경제인총연합회 회장으로서 펼쳐갈 프로잭트는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져보고 싶었다.
[경찰연합신문 김수빈 기자] = 필리핀 한인경제인의 역사를 다시쓴 인물이 있다. 필리핀 한인 사회에 ‘대모’와도 같은 여성 경제인 ‘박복희’. 필리핀 한인경제인총연합회장을 말하는 것이다.
물론 여성 경제인을 말하면 여러 사람의 얼굴을 연상할 수 있지만, 필리핀 한인경제인 연합회를 언급하면 당연히 박복희 회장이 지목된다. 강원도 태백출신인 박복희 회장은 철저한 시장경제 주의자다.
“경영, 즉 CEO는 굉장히 매력적인 직업입니다. 능력으로 평가받고, 능력으로 성패를 가르는 생존경쟁의 경제문화에서의 경영인의 길은 그 자체가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 같지만, 성취와 쟁취의 가치를 구현해낼 때는 산악인이 최고봉 정상에 올라 깃발을 꼽는 것과 같은 카타르시즘을 느끼게 됩니다.”
기자와의 인터뷰 전, 박복희 회장은 CEO에 대한 나름의 소신을 이렇게 정의했다.
2개월여 만에 만난 박복희 필리핀 한인경제인총연합회 회장은 나지막한 목소리였지만, 호소력이 강했다. 차분하고 온화한 목소리지만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강력했다.
국제적으로 경제적인 슬럼화가 확산되고 있지만 이를 극복하려는 박복희 회장의 구상은 필리핀 한인경제인총연합회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제가 필리핀 한인경제인총연합회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여러 모임에서 연설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때마다 시장경제의 중요성과 필리핀과 한국간의 경제교류에 대한 필요성을 피력해 왔습니다. 물론 호응이 좋았습니다. 나의 고국인 대한민국을 널리 알리는것도 중요했고,또 너무많은 경제인들이 어려움을 격고 있기 때문에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중에 있습니다. 제가 회장으로 취임한 이상 반드시 회원 모두가 공감하고, 그동안 이루어 내지못한 현안들을 실천하는데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박복희 회장의 이러한 발언은 진실이 그대로 농축되어 있었다.
사실 박복희 회장님은 한기업의 오너이기도 하지만,더큰 의미에서는 필리핀 한인경제인 연합회를 리더하는 역할을 하고있습니다. 회장으로서의 소견을 정리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혹자들은 제가 사업가라는 점에서, 또 한인경제인총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으니까 아무래도 재정에 관한 문제와 사업확장에만 주력할 것이라는 사람들이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한 기업의 오너이기 이전에 한인경제인총엽합회 회장으로서의 역할에 우선해야 한다는 중요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우선해야 할 일은 한인경제인총연합회 일부터 처리해야만 합니다. 회원사들과의 의사소통, 협력방안, 권익보호, 오너들과의 친목관계에 이르기까지 제가 직접 챙기고 있습니다.
다만, 저도 인간이고 또 여자이기에 행복이라는것에 대해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어떤 철학적 의미에서 거창한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주장하고 싶습니다.
‘경제가 무엇이냐?’ 바로 ‘행복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배가 고프지 않아야 하고, 남보다 너무 못살아서 배가 아픈 일이 없어야 하며, 또 어느 누구도 자기 자신을 얕잡아 보게 해서는 안됩니다.
첫번째로 언급한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은 ‘산업혁명’입니다. 산업혁명으로 인류의 생산성이 높아지면서 배고픔이 줄었지만, 인류의 먹거리는 언젠가 무기가 돼서 인간들을 곤혹에 빠지게 할수도 있습니다.
여기에는 사람들이 섭취하는 곡물, 야채, 물 등도 모두 포함됩니다. 그러기에 우리 대한민국도 이 문제에 대해 깊은 관심과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것을 제안합니다. 이러한 저의 말이 단순한 것 같지만, 사실은 의미심장한 사항입니다.
회장님은 원래 활동적이었나요 한인경제인총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한데요.
“한동안 저는 깎두기라고 생각한적이 있습니다. 여기저기 참견을 하지 않은데가 없습니다. 어쩌면 내 뒤치닥거리 하기도 바쁜데 남의 어려운 일을 그냥 보고만 있지 못하는 성미가 되다보니까 이런저런 궂은 일을 다했습니다. 또 열심히 경영하고, 클라이언트(고객)의 불만도 챙기곤 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남의 대·소사 챙기는건 여전합니다.
박복희 회장은 말의 막힘이 없었다. 생활의 일상사부터 비즈니스 전략까지 다소 민감할 수 있는 이야기도 마다하지 않고 자신의 심경을 토로했다.
세간에는 박복희 회장을 필리핀 한인경제인총연합회의 ‘미다스’라고 부르지만 창업 이후, 여러번의 시련을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기업인으로 활동하는 그의 저력은 무엇보다 ‘인간적인 진솔함’에서 나온다.
여성 기업인으로서 느끼는 한계 같은건 없습니까?
“외국 기업들은 대체적으로 포맷으로 움직이니까 발주처 관계자들과 밥을 안먹어도 영업을 할수가 있는데 한국에선 단계도 많고, 여러 사람과 관계도 빈번해야 했습니다. 어떤때는 인적 네트워크가 없으니까 늘 영업이 문제가 되곤 했습니다. 남성들은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성장하는 경우가 많은데, 솔직히 여성 기업인들은 한계가 많아요. 오죽하면 내가 남자였다면 지금의 기업형태를 두, 세배는 더키웠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웃음) 진짜로 밤을 세워 열심히 만든 프로잭트가 실패될때는 눈물도 많이 흘렷습니다.”
인터뷰를 계속하면서, 박복희 회장의 낭만 어린 미소와 고즈넉한 여성스러움에서 느끼는 것들을 곱씹을 때마다 그가 말한 것에 대해 고개가 끄덕여졌다.
박복희 회장은 기업을 경영하면서 단 한번도 비굴하지 않았다. 돈만 생각한다는 금전적인것에 노에가 되지도 않았다. 언제나 현실을 직시할수 있는 용기를 갖고 활동을 했다.
박복희 회장은 “놀랍게도 국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저리기도 하고, 불끈 용기가 솟는다.”고 피력하면서 “이럴때는 성취감에 도취되어 눈물이 어리기도 한다.”고 숙연해 했다.
필리핀 한인경제인총연합회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항상 회원사들을 생각하고 어려운 문제들을 처리하지만, 자신을 스스로 낮추고, 가식이 아닌 겸양, 진실과 책임, 끊임없는 노력, 그리고 자기 철학이 밑받침이 된 박복희 회장의 헌신적인 실천은 누구도 쉽게 흉내낼수 없는 것들이다.
사실 박복희 회장의 출중한 실력은 한인사회 모두가 인정하는 터여서 민감한 부분에 대해서는 질문하기가 쉽지 않았다. 너무나도 각 분야별로 박식해서였다.
그런데 박복희 회장의 발언 구절구절에 이미 기자의 질문요지에 대한 대답들이 농축되어 있었다. 그는 하고 싶은 말은 감추지도 과장하지도 않고 솔직담백하게 말하는 스타일이다.
경제에 대해 살펴본다는 게, 여성의 현실에 대해 말하는 형식이 돼버린 것도, 이 대담기사를 읽는 독자들이 눈여겨 봐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박복희 한인경제인총연합회 회장이라는 타이틀은 지금까지 열정적으로 살아온 그의 산물이기도 하다.
“기업인으로 산다는 것은 작은 배를 타고 풍파가 밀려오는 바다로 나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외롭고, 위험하기까지 하며,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단련시켜야 하고,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것과도 마주하며 살아야 하는 곤욕을 참아야 하는 등 오로지 어던 난관에도 피하지 않고 온전하게 경영인의 길을 항해하여 왔다고 생각합니다.”
박복희 회장은 또, “한 기업의 경영이란 모든 일을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리면 안됩니다. 자신의 경험을 최대한 살려서 있는 그대로 자신을 드러낼때 그 경영인의 평가가 제대로 사회에 반영된다는 신조를 갖고 있습니다.”라고 피력했다.
그래서일까 박복희 회장에 대한 사람들의 존경심은 이처럼 스스럼 없는 자기 개방에서 생긴 것이 아닐까 싶다.
경영인으로서의 최소한의 조건, 시장경제 체제의 확고한 실천, 경제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직관력, 국제사회에서도 유감없는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저력 등이 한데 어우러져 CEO를 탄생시킨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그는, 지금까지 아무리 벅찬 일이 있어도 그 일을 기피하거나 잔꾀를 부려서 피해가지 않았다.
물론 지금까지의 박복희 회장의 역정은, 살을 깎고 피를 말리는 책임의식 속에서 이룬 것들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 이것은 박복희 회장의 삶의 철학처럼 지키고 있는 말이다. 그런데 박복희 회장에게도 아직 실현되지 않은 꿈이있다. 그래서 박복희 회장에게 물었다.
아직도 꿈에 그리고 있는 것이 있느냐고?
“사람들은 열 개를 얻었서도 갖고 싶은 또다른 것이 있으면 그것을 쟁취하려는 욕심들을 항상 품안에 간직하고 있게 마련인데,나라고 그러한 생각이 없었겠습니까?
특히 사업을 하다보면 끊임없이 배반당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계획을 세우는데, 그 또한 어찌 저만의 일이겠습니까.
결국에는 못가진 것에 대한 것들을 갖고 싶어하는 욕망이 기업인에게 있어서도 꿈인 것인데, 이건 경영인으로 태어난 사람들의 운명과도 같은 것일 겁니다.
박복희 회장은 이 대답의 말미에서 “뜻하지 않게 닥쳐온 무서운 고통과 절망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사람이면 누구나 다 겪어야 한다고 하는, ‘숙명’이라는 것이 운명을 비켜갈 수도 있지 않느냐’는 기자의 후렴에, 박복희 회장은 “과거에 얽메이고 싶지 않아서 잊고 살아가는게 많기도 해서 그렇지만, 어떤때는 기억의 불확실성이 행복할때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모르는게 약이다’라는 말을 웃으면서 토로했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을 같이 공유했던 가족들이나 동료들과 과거를 반추하여 보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때마다 가끔 잊어도 괜찮은 가슴아픈 이야기들을 기억하고 할때는, 괜히 생살을 휘집어 내는것과 같은 삶의 이치를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이같은 박복희 회장의 말은, 경영인으로서가 아니라 한 여자로서의 휴머니터를 읽게하여 주었다. 아픈 기억을 괜시리 되살려 마음의 상처를 갖는 것 보다는 아예 모르고 사는게 날수도 있을 것이라는 박복희 회장의 말에,
기자는 필리핀 한인경제인총연합회장으로 피선되었을 때의 심정을 물었다.
“힘에 부치는 경영자의 길을 가는 것도 녹녹치 않은터에,경제인들 전체를 책임지는 단체에 회장을 맏는다는게 한편으로는 버겁다는 생각을 아니했던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회장으로 선출된 직 후 바로 생각했습니다. 여성으로서 회장으로 풀범을 해서이기도 했겠지만, 한인경제인총연합회 회원들 자체도 저에게 거는 기대가 남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유쾌한 마음으로 정열을 다해서 한인경제인총연합회를 이끌어 가자. 이건 나에게 주어진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열정을 쏟아부었습니다. 저는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제가 회장으로 있는 임기 동안에 건설적인 업적을 반드시 남기겠다고 말입니다.”
기업가로서, 한인연합회총회장으로 역할을 하다보면, 항상 공적인 일에 시간을 소비하게 되는데, 개인적인 시간은 어떻게 갖느냐고 물었다.
“항상 바쁘고 공적인 시간에 쫓겨사는건 맞습니다. 그래도 저에게 회장의 소임을 할 수 있도록 기회가 주어졌다는건 무엇보다 고마운 일입니다. 어떤 때는 저에게 이러한 역할을 만들어준 회원들에게 책임감 같은 것을 느끼곤 합니다. 그렇지만 공적으로 바쁜 와중에서도 적당한 육체노동, 맛있는 식사, 즐거운 휴가, 또는 마음에 맞는 사람들을 만나면 적당한 수다도 떨면서, 어떤때는 미운 사람을 욕도 하고, 뭐 그렇게 지냅니다. 기자님, 저도 일반적인 통속적인 마음의 여백을 갖고 있습니다.”
박복희 회장의 이러한 면모는 곧 그의 화려한 직책에서 느끼게 마련인 거부감을 가지게 해준다.
특히 박복희 회장은 필리핀 한인경제인총연합회 회장을 권위적으로 생각하거나 교만하지 않으려고 한다. 연합회 회장으로 취임한 후에 느낀것이지만, 한인연합회총회장 역할이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니라고 했다.
자신의 개인적인 일 보다는, 공익을 위해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자기만의 주장을 펼치고 싶고, 자신의 역할을 돋보이게 하고 싶은 사람에겐 결코 쉬운 역할이 아니라는 것을 피력했다.
또 필리핀 한인경제 사회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낼 정도의 파워를 갖고 있는 박복희 회장은 사실 여성 경제인이 드물었던 분야에서 최고를 달리고 있다. 그런 까닭에 여성경제인의 롤모델이 되고 있는 현실에 있는 것이다.
박복희 회장의 박학다식함은 필리핀 한인경제 사회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또 한국의 기업가들이 정부측의 규제 때문에 어려운 점을 예로 들면서, 한국의 경제인들도 한국이라는 울타리를 뛰어넘어 세계적인 경제교류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본지가 필리핀 한인경제인총엽합회 박복희 회장의 표지 스토리를 전개하는 것은 4월호에 게제된 연장선에서 구성되었음을 공지하며, 이번 글에서는 그의 휴머니즘에 바탕한 것을 엮어보기로 하였다.
그러기에 박복희 회장에 대한 평가는 단순하게 그가 한국 여성이어서가 아니라 필리핀 한인경제인총연합회 회장으로서 갖는 의미가 더크다.
더욱이 박복희 회장의 모두를 표명하려면 거대한 캠퍼스와 같아서 깊히 심층적으로 다루어야할 사안들이 많다. 까닭에 혹여라도 박복희 회장에 대해 아쉬운 점이나 미쳐 다루지 못한 사항에 대해서는 또다른 지면을 통해 구체적으로 다룰것임을 독자 제위에게 약속드린다.
박복희 회장은 자신의 지난날을 반추해 보면서, 돌이켜보면 밭에 김을 메는 심정으로 살아왔다고 했다. 때로는 김메는 호미자루를 내던지고 싶을때도 있었지만 그냥 후비적 후비적 김메기를 멈추지 않았다고 했다.
김을 멘 후의 결과가 거둘것이 보잘것 없다고 해도 늘, 아니 항상 인간 박복희에게는 김을 멜 터전이 있어 왔다는걸 큰 복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날마다 가슴이 울렁거리는 삶을 산다고 했을때는 마치 사춘기 소녀가 연상되듯 경탄과 기쁨을 자아낸다.
소녀같은 낭만뒤에 서려있는 또 하나는 치열하게 살아온 흔적들이 그의 언저리를 감싸고 돌았다.
물론 박복희 회장이 남루하고 척박한 시대도 살아냈다. 그런 가운데서도 그만의 사랑이 그의 가슴을 부풀게 한적이 없지 않았다.
그의 여자로서의 사랑은 ‘자신의 마음의 연못’이었다. 그리고 범속하고 따분한 일상에 생기를 불어넣는 힘이었다. 그만의 사랑의 기억들이 기업가로서 살아남기 위한 아귀다툼에서 잊혀지곤 했지만, 그의 의지는 누추했던 삶을 뛰어넘는 힘으로 작동했다.
필리핀 한인경제인총연합회 회원들에 대한 고마움과 사랑, 단 한번도 그럴싸한 말을 전해주지 못햇다면서, 언제 한번 근사한 식사대접을 할일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했다.